* 학부 시절 영국 시 수업 들으면서 작성했던 과제

사회는 계속해서 변화한다. 과거에서 현재까지 사회가 끊임없이 변화해 왔다. 그러나 '사회는 더 나은 방향으로 변화한다'는 문장이 참인 명제가 될 수 있는가? 아마 선뜻 그렇다고 대답하기는 힘들 것이다. 길게는 200여 년 전의 사회 비판 시에서 마저도 현 사회의 문제점을 마주하게 된다. 과거 영국 시인들 또한 시대를 불문하고 그들이 살아가던 당시 사회를 비판하는 시를 여럿 남겼는데, 그 속의 사회 양상이 현대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그 시가 낭만주의 시대의 시이건, 빅토리아 시대의 시이건, 20세기 시대의 시이건 비판의 대상이 되는 사회적 상황은 그 양상만 조금씩 바뀐 채 항상 나타나고 있다. 그럼에도 많은 사회 비판적 시 속에서 드러나는 작가의 관점은 다르다. 어떤 작가는 사회를 비판하면서도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긍정적인 반향에 초점을 두고, 어떤 작가는 더욱 부정적인 관점에서 아예 개선의 여지를 차단해버리기도 한다.
이렇듯 다양한 시대의 다양한 사회 비판 시를 읽고 그 속에서 나타난 사회적 상황과 작가의 견해를 비교함으로써 그를 현 사회에서도 적용하여 생각해 볼 수 있다. 따라서 해당 에세이에서는 낭만 시대의 시인 P.B. Shelley의 'England in 1819;, 빅토리아 시대의 시인 Alfred Tennyson의 'Ulysses', 20세기 시인 Thomas Hardy의 'Channel Firing'을 비교하고자 한다.
PERCY BYSSHE SHELLEY 'England in 1819'
가장 먼저 낭만 시대의 시인 셸리가 쓴 시 'England in 1819' 에서는 당시의 혼란스러운 사회적 상황을 노골적으로 묘사하며 비판하고 있다. 시의 제목인 1819년에 영국에서는 피털루 학살이 일어났다. 이 피털루 학살은 프랑스와 영국 사이의 전쟁이 끝난 이후 돌아온 군인들에 의하여 실직자가 증가하고, 곡물법에 이해 하층계급의 삶이 힘들어지던 시기에 일어난 사건이다. 당시 하층계급들은 1815년 실시된, 지주들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외국 수입 곡물에 높은 관세를 부과하는 곡물법으로 더욱 굶주리게 되었다. 게다가 산업 혁명 이후 1812년 기계를 훼손하고 망가뜨릴 시 사형에 처한다는 법안까지 통과된 상태였다. 이는 자본가인 공장주의 이익을 보장해 주는 법안인 동시에, 하층 노동자들의 가치가 기계보다 낮은 곳에 있었던 당시의 상황을 반영하는 법안이었다. 시 속의 'Golden and sanguine laws'라는 표현은 당시의 법은 돈으로 인해 만들어졌으며, 동시에 그 법으로 인해 사람들이 피해 입고 죽어가는 상황을 비판한 것이다.
이렇게 국가가 민중을 억압하고 자본가의 편에 서 있는 당시의 상황 속에서 민중들은 자신의 권리를 위하여 'Time's worst statue'로 표현되는 의회의 정상 개원과 보통 선거권을 주장하며 평화적 시위를 전개하였다. 그러나 'starved and stabbed in th' untilled field'라는 구절에서 알 수 있듯이, 평화적 시위에 돌아온 건 폭력이었다. 당시 ruler 들은 알지도, 보지도, 느끼지도 못하고 거머리처럼 영국의 피를 빨아먹기에 급급하였기에 민중의 요구를 듣지도 알지도 못하며 그들을 억압했다. 더군다나 이런 혼란스러운 시대에서 정신적 버팀목이 되어야 할 종교는 'Christless, Godless—a book sealed'였다. 왕족부터 시작하여 통치가, 의회, 법, 하물며 종교까지도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던 당시의 사회적 상황을 Shelley는 England in 1819를 통해 비판했다.
Alfred Tennyson 'Ulysses'
빅토리아 시대의 Alfred Tennyson 의 시 'Ulysses'는 다른 두 시와는 달리 노골적으로 사회를 비판하지는 않는다. 'Ulysses'에는 율리시스가 그의 선원들에게 함께 모험을 떠날 것을 설득하고 있는 내용을 담고 있지만 당시 빅토리아 시대의 시대상이 드러나 있다. 그 시대상에 대한 태도가 부정적인지 긍정적인지는 시를 해석하는 이에 따라 다를 것이다. 그러나 본 에세이에서는 테니슨이 당시 빅토리아 시대를 부정적 시선으로 보고 있다고 가정하려 한다.
율리시스가 'savage race, that hoard and sleep and feed'라고 말하는 이들은 빅토리아 시대 당시의 사람들의 모습과 닮아있다. 산업혁명에 박차가 가해져 산업과 과학이 발달하고, '해가 지지 않는 나라'로 성장하고 있던 영국의 국민들은 그저 먹고 자고 축적하는 것 ( hoard and sleep and feed ) 밖에 모르는 물질주의적 측면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한 특성을 가진 백성들을 'savage'라는 부정적 단어로 언급한 것은 테니슨의 빅토리아 시대상에 대한 부정적 표현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또한, 율리시스는 계속해서 선원들을 설득하며 untravell'd world 혹은 a newer world로 떠나고자 한다. 이는 율리시스처럼 knowledge를 추구하며 멈추지 않고 끊임없이 발전을 추구하던 당시 영국의 모습을 반영한다. 동시에, a nwer world로 표현되는 식민지 건설을 통해 이익을 취하려 한 영구의 제국주의적 모습으로 볼 수도 있다. 시가 발간된 시기가 1842년, 청과 영국 사이의 아편 전쟁이 발발했던 시기임을 생각해 본다면, 끊임없이 무언가를 좇아 나아가고자 하는 율리시스의 모습과 영국의 제국적 모습이 무관해 보이지는 않는다.
Thomas Hardy ' Channel Firing'
마지막으로 20세기 Hardy의 시 'Channel Firing'에서는 비판하고자 하는 시대적 상황이 비교적 명확히 드러난다. 'gunnery practive out at sea'라는 표현 해서 알 수 있듯 당시 영국, 나아가 유럽 전체는 전쟁이 터지면 언제든 맞설 수 있도록 연습을 하던 중이었다. 이에 대해 하디는 시체의 입을 빌려 ' Will the world ever sanner be' 라고 말한다. 이는 현재의 사회는 sane 하지 않다는 뜻을 내포한다. 또한 'All nations stiriving strong to make red war yet redder', 'mad as hatters' 등과 같은 표현을 통해 당시 사람들이 전쟁을 끊임없이 일으키고 있었으며, 이를 하디는 'mad'한 일이라고 보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하디는 제1차 세계 대전 직전 영국 해협에서의 함포사격 상황을 배경으로 'mad', 'threatening', 'drearisome' 등의 부정적 단어를 사용함으로써 잔인한 전쟁을 끊임없이 일으키는 인간 ( just as before you went below라는 구절을 통해 이러한 일이 과거에도 발생했음을 알 수 있다)과 당시 상황을 부정적으로 바라보고 비판하였음을 알 수 있다.
시에 나타난 사회 비판 태도 비교
드러나는 정도는 다르지만, 세 시 모두 공통적으로 당대 사회에 비판적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사회에 희망을 품고 있는지, 비관적 태도로 일관하는지는 조금씩 다르다.
혁명은 계속되어야 한다, P.B. Shelley
셸리의 시 'England in 1819'에서는 마지막 두 행에서 앞으로의 변화에 대한 셸리의 견해가 드러난다.
graves from which a glorious Phantom may Burst, to illuminate or tempestious days
그 모든 문제점들이 광포한 나날을 비춰주기 위해 영광스러운 phantom 이 터져 나올지도 모르는 (혹은 그러하길 바라는) 무덤들이라는 것이다. 이때 'may'라는 단어의 뜻이 불확실성을 나타내는 의미와 희망과 소원을 의미하는 두 가지 방향으로 해석된다. 어느 뜻으로 해석하여도 결국은 이 상황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바꿀 수 있는 phantom 이 burst 할 것인지는 불확실하다. 이 phantom 마저도 현실의 것이 아닌 '유령'으로, 실제로 이 사회가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이러한 셸리의 관점은 그의 다른 시 'Ode to the west wind'를 참고하면 더욱 명확히 이해할 수 있다. 서풍을 혁명으로 해석한다면, 순환적 특징을 가지는 서풍, 즉 혁명은 모든 것을 한 번에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점진적이고 계속적인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봤을 때 셸리는 미래에 대한 희망과 불신을 모두 품고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점진적이고 계속적인 혁명을 통해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가능성을 품고 있다.
율리시스의 최후, Alfred Tennyson
테니슨은 율리시스의 모습을 통해 빅토리아 시기 사람들의 모습을 드러냈으나, 시를 통해 그들을 직접적으로 비판하거나 앞으로의 사회에 대해 언급한 바는 없다. 그러나 독자들은 새로운 세계를 끊임없이 추구하고 진보하길 원하는 율리시스의 탐험이 어떠한 결말을 맞이하는지 이미 알고 있다. 테니슨이 시의 모티브를 얻은 단테의 '신곡' 속 율리시스는 결국 서쪽에서 침몰하여 죽은 후 지옥에 가게 된다. 그렇다면, 비록 '율리시스' 시 속에서 테니슨이 노골적이거나 직접적으로 당시 시대상을 비판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빅토리아 시기의 끊임없이 발전을 추구하는 자세나 진취적으로 무언가를 쟁취하려 하는 율리시스와 같은 당시 사람들의 태도는 미래엔 결국 실패로 끝날 것이라는 걸 암시한다고 볼 수도 있다.
변하지 않는 폭력성, Thomas Hardy
토마스 하디의 'Channel Firing'에서는 마지막 연에서 토마스의 태도가 드러난다.
Again the guns diturbed the hour,
Roaring their readiness to avenge,
As far inland as Stourton Tower,
And Camelot, and starlit Stonehenge.
'again'이라는 단어를 맨 앞에 두어 폭력적인 상태가 반복된다는 점을 강조한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As dar inland as Stourton Tower, and Camelot, and starlit Stonehenge'의 행에서 그가 사회가 맞이할 미래를 다소 비관적인 태도로 바라보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앞선 시의 구절에서 Stourton Tower, Camelot, starlit Stonehenge는 차례대로 과거로 거슬러가는데, 이 장소들은 모두 전쟁이나 죽음과 관련된 장소이다. 이처럼 하디는 과거부터 전쟁과 폭력적인 일들은 현재까지 이어져 왔음을 상기시킨다. 과거나 현재는 변한 바 없기에 미래에도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비관적 태도를 내비치고 있는 것이다. 시대에 비관적인 그의 태도는 이전의 시 'The Darkling Thrush'에서도 이미 나타난다. 희망을 노래하는 지빠귀새의 무한한 기쁨의 울음소리 (joy limited)를 긍정적으로 보지 않으며, 시 속 화자는 새의 노랫소리에서 희망을 볼 수 있다고 확신하는 게 아닌 '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소극적 자세를 보인다. 또한 그 희망에 대해 자기 자신은 'unaware' 하다고 말하며 시대에 비관적 태도를 보인다.
결론적으로 세 시 모두 시인이 살아가던 시대의 문제점을 지적했고 미래에 대해 부정적으로 바라보았다는 점은 동일하다. 그러나 세부적 견해나 미래에 대한 희망은 조금씩 차이를 보였다. 셸리와 하디는 공통적으로 사회가 긍정적으로 바뀔 수 있을지에 대한 확신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셸리의 경우 희망을 품고 있지만, 하디의 경우는 더 회의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다. 반면 테니슨의 작품에서는 직접적으로 화자의 입을 통해 견해가 드러나는 부분은 없지만, 시의 모티브가 된 작품에서 율리시스가 결국 지옥으로 가는 결말을 맞이한다는 사실을 통해 사회의 분위기에 대해 부정적으로 지적하고, 그 결과가 좋지 않을 것을 예상할 수 있다. 이렇게 세 시 모두 각자 다른 시기에, 각자 다른 작가가 쓴 시이지만 여전히 그 작품 속에 나타난 문제점들은 현 사회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셸리가 지적한 차별 및 폭력성과 인간의 물화, 테니슨의 시에서 나타난 물질추구, 하디가 지적한 폭력 등은 현 사회에서도 여전히 볼 수 있는 모습들이다. 그 오래전 과거의 문제점이 현대에서도 존재한다는 사실을 보면 세 시인의 미래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이 아주 틀린 것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시인들이 사회의 문제점을 계속해서 지적하고 비판하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 아닌, 사회를 더 나은 방향으로 바꾸기 위한 거름이다. 여전히 현 사회에서 부정적 요소들이 존재한다고 하여도, 민중들은 투표권을 쟁취해 냈고, 물질 만능주의 사회 속에서 인권을 보호하기 위한 법들이 제정되었으며, 폭력에 반대하는 여러 국제 조약들이 체결되었다. 이처럼 끊임없는 사회 비판과 성찰을 결국 사회를 조금이나마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어가는 것이다. 과거 그들이 예상했듯 현 사회가 부정적인 모습을 여전히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과거 시인들처럼 그 문제를 인식하고 비판하는 이들이 있는 이상 사회는 점진적으로 개선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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